인생

여름에 다시 떠올린 어느 겨울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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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은 이상하다. 밖에서는 매미가 쉬지 않고 울고, 창문을 열면 후끈한 공기가 방 안으로 밀려 들어온다. 에어컨 바람을 쐬며 시원함을 느끼고 있는데도 문득 겨울이 생각날 때가 있다. 그것도 유난히 눈이 많이 내리던 어느 밤 말이다.

이 사진을 보고 있으니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정말 많이 왔었구나.’라는 것이다. 사진 속 가로등 아래로 쏟아지는 눈은 마치 하늘에서 솜을 한 아름씩 던지는 것처럼 보인다. 그날은 분명 우산을 쓰고 있었을 수도 있고, 모자를 눌러쓰고 걸었을 수도 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을 것 같다. 눈은 사방에서 날렸고, 몇 분만 걸어도 어깨와 머리 위에는 하얗게 눈이 쌓였을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사진을 여름에 보고 있으니 추웠던 기억보다 시원했던 기억이 먼저 떠오른다. 지금은 잠깐 밖에 나가도 등에 땀이 흐르고, 햇볕을 몇 분만 받아도 지칠 만큼 더운데, 사진 속 풍경은 보기만 해도 체감 온도가 몇 도는 내려가는 기분이다. 눈송이가 화면을 가득 메운 모습이 에어컨보다 더 시원하게 느껴진다.

가로등 불빛도 참 인상적이다. 평소에는 그냥 길을 밝히는 평범한 가로등일 뿐인데, 눈이 내리는 날에는 전혀 다른 역할을 한다. 빛을 받으며 반짝이는 눈송이 덕분에 평범한 골목이 영화 속 한 장면처럼 변한다. 사진 속에서는 눈이 너무 많이 내려서 하늘과 땅의 경계마저 희미하게 보인다. 어두운 밤인데도 전혀 답답하지 않고 오히려 밝고 포근한 느낌이 든다.

사진을 자세히 보면 골목길은 조용하다. 자동차 몇 대가 세워져 있고, 건물들은 불빛을 머금은 채 묵묵히 서 있다. 사람은 보이지 않지만 이상하게 사람들의 생활이 느껴진다. 따뜻한 집 안에서 창밖을 바라보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고, 퇴근길을 서두르던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누군가는 눈 때문에 걱정했겠지만, 또 누군가는 오랜만에 내리는 눈을 보며 사진을 찍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겨울에는 눈이 오면 불편한 점도 많다. 길이 미끄럽고, 차가 막히고, 신발은 젖는다. 출근길에는 괜히 한숨부터 나오기도 한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여름에 다시 사진을 보면 그런 불편했던 기억은 신기하게도 거의 남지 않는다. 오히려 그날의 분위기와 공기, 그리고 조용했던 골목의 모습만 선명하게 떠오른다.

사람의 기억이란 참 신기한 것 같다. 힘들었던 순간도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부드럽게 다듬어진다. 그래서 겨울에는 빨리 여름이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여름이 되면 다시 겨울이 그리워진다. 아마 지금 이 사진을 보며 시원함을 느끼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첫 번째 사진에서는 눈송이가 아주 크게 보인다. 카메라 가까이로 떨어지는 눈들이 커다란 흰 점처럼 찍혀 있어서 눈이 얼마나 많이 내렸는지 그대로 전해진다. 실제로 그 자리에 서 있었다면 얼굴에도 눈이 계속 부딪히고, 속눈썹에도 눈이 내려앉았을 것이다. 차가운 공기에 숨을 내쉬면 입김이 피어오르고, 두 손은 주머니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갔을 것 같다.

두 번째 사진은 골목이 조금 더 넓게 담겨 있다. 젖은 도로는 가로등 불빛을 비추며 반짝이고 있고, 멀리 보이는 희미한 불빛은 눈발 때문에 더욱 몽환적으로 느껴진다. 여름 장마철의 빗길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다. 비는 축축하고 무겁게 느껴지지만, 눈은 차갑지만 어딘가 조용하고 차분한 감성을 만들어 준다.

세 번째 사진에서는 눈이 마치 폭포처럼 쏟아지는 것 같다. 사진 한 장만으로도 그날의 날씨를 짐작할 수 있을 정도다. 그만큼 강한 눈이 내리고 있는데도 이상하게 무섭거나 거칠다는 느낌보다 아름답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자연은 때로는 불편함을 주기도 하지만, 그 불편함 속에서도 잊지 못할 풍경을 선물해 준다는 것을 다시 느끼게 된다.

요즘처럼 더운 여름에는 이런 겨울 사진 한 장이 작은 휴식처럼 다가온다. 잠깐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시원한 기분이 들고, 계절이 바뀌면 또 다른 풍경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반갑게 느껴진다. 매년 반복되는 계절이지만 같은 겨울도, 같은 눈도 똑같은 모습으로 찾아오지는 않는다. 그래서 그 순간을 사진으로 남겨두는 일이 더 소중한 것 같다.

아마 시간이 더 흘러 몇 년 뒤에 이 사진을 다시 보게 되면, 눈이 얼마나 많이 왔는지보다 그날의 감정이 먼저 떠오를지도 모른다. ‘그날 참 조용했지.’, ‘길을 걸으면서 한참을 하늘만 바라봤었지.’, ‘손은 시렸지만 괜히 기분은 좋았었지.’ 같은 기억들 말이다. 사진은 단순히 풍경을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그날의 공기와 기분까지 함께 담아두는 작은 타임캡슐이라는 생각이 든다.

무더운 여름날, 시원한 음료 한 잔을 마시며 이 사진들을 천천히 바라보고 있으면 계절이 잠시 바뀐 것 같은 착각이 든다. 귀에는 매미 소리가 들리는데 눈앞에는 함박눈이 내리고 있다. 계절은 정반대지만, 사진 한 장이 주는 힘은 생각보다 크다. 더위에 지친 마음을 잠시 식혀 주고, 지나간 겨울의 차가운 공기와 고요한 밤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 오늘도 이 사진을 한참 바라보게 된다. 지금은 땀을 흘리며 여름을 보내고 있지만, 머지않아 다시 겨울은 찾아올 것이다. 그때가 되면 또 추위를 투덜거리겠지만, 다음 여름이 오면 분명 오늘처럼 이 눈 내리던 사진을 보며 “그래도 겨울은 참 아름다웠다.”라고 웃으며 추억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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